그림은 원화를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프랑스 파리를 짧게나마 필자는 지난 2월에 다녀온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한 것도 뜻 깊은 체험이었으며 남의 나라 문화재가 이렇게 많이 궁전과 같은 곳에 입주해 있는 일도 신기한 일이었다.그 많은 미술품과 문화재를 보고 있노라니 현재에 있지만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제리코가 그린 메듀사 호의 뗏목 (1819년, 캔버스에 유채, 491*717cm)을 보고 작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상상을 하며 자료를 보니 의대생들이 보내준 시체를 실재로 보고 그렸다는 것과 폭풍우 속에서 실재로 뗏목을 타보기도 했다는 사실, 낭만주의 화가는 과연 어떤 태도로 그림을 그렸을까 가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테오도르 제리코_메두사 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_메두사 호의 뗏목

암초에 부딪쳐 표류한 사람은 149명 그것도 난파되어 임시로 만든 배로 12일간의 표류를 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15명뿐이었다고 한다.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기도 했다는 사실. 들라크르와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루브르미술관에 소장 되어 있었다.왕정복고를 반대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으로 격양된 감정을 통해 7월혁명을 표현하고자 했다.

가로가 3.25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림이라 한참이나 바라봤고 감동했다.이번 호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사실 구스타브 쿠르베를 이야기 하고자 했는데 서론이 길어졌다.

 

 

구스타브 쿠르베

미술사에 있어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다투는 바람에 미술이 많이 다양해졌다고 보는데 이 둘이 제 3의 미술 리얼리즘 미술을 등장시킨 것이다.쿠르베는 기록이나 여러 편지글에서 자신은 사회주의자이며 리얼리스트라고 밝히고 있다.대학시절 1987년부터 88년 후반까지 우리나라 즉 내가 다녔던 대학은 데모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고 그런 현장의 주변부에서 그렇게 감성적이던 본인은 사회 현실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시위현장에도 나가고 했다.

그림을 전공하던 사람으로서 무언가 리얼하게 바라보고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필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왜냐하면 입시교육에 찌들려 대학에 들어와서는 혼돈된 현실로만 받아들여 졌던 것이었다.

쿠르베의 그림에는 신화나 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이 삶을 그릴려고 한 것이다.80년대 우리의 민중미술도 그러하다.임옥상 등 힘전이라는 그룹, 임술년이라는 그룹 여러그룹들이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고발하는 것들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쿠르베는 ‘내게 천사를 보여달라, 그러면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는 말로 유명하다.

 

돌깨는 사람

귀스타브 쿠르베_돌깨는 사람들

돌깨는 사람, 화가의 작업실 등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이 있다.쿠르베는 무엇을 왜 그려야 하는가의 문제를 던지며 1850년대를 보낸 것이다.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이 거부된 작품인 화가의 작업실은 폭이 6미터 정도의 대작으로 여러 계층의 사람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미술용어로 알레고리라는 것으로 칼을 든 여성은 힘을 석고나체상 앞에서 젖을 먹이고 있는 여자는 비참한 사회 현실을 말하고 있다.오른편에는 쿠르베의 예술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사람.이렇게 여러 이미지들이 배치되어 각자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돌깨는 사람’이라는 그림에서는 소년과 노인이 흐름한 옷으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표현했다고 한다.이런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지 않고 그림을 본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그림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그림은 원화를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가까이서 봐야한다. 멀리서는 안보인다.그래서 때론 사람도 가까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잘 알 수 있다고…

Last modified: 2017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