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 예술로 본 사회

천국을 보는 방법

밀레의 만종

 

 

 

The Angelus,1857-1859년, Musée d’Orsay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어께를 움츠리게 했지만, 언제 부터인지도 모르는 따스한 햇살로 죽어보이던 나무와 들판에 푸른 새싹으로 뒤덮였다. 겨울에 그토록 고마움을 느끼던 햇살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벌써 여름가까이 다가갔구나 하는 시간의 속도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쉬지 않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총이라 느끼게 되었고, 신에 대한 찬미적 감성을 인류는 수많은 예술기록으로서 남겨놓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한 듯 신의 은총을 믿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당연한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은 신의 은총이라던 자연의 변화에도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미술에서도 과거의 미술 사조를 절대적 미로 생각하고 신화나 명작을 재현하는 것이 예술의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던 예술가들에게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19세기 초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과 현실의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 진실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한 사실주의 화풍이 나왔다. 이렇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오랫동안 해온 일이지만 그들이 사실이라 생각하는 것은 조금 달랐다. 표현되어 재생되는 것이 아닌 현시대의 상황에 대한 재현이 시작된 것이었다. 고전주의미술이 보여주던 인위적, 장식적 기교로 우아함을 강조하던 미술을 거부하고 관람자의 감동은 동시대적인 인식을 통해야 직접적 감동을 줄 수 있다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기위해서 몇몇 화가들은 대단한 곳이나 사건에서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모델로 삼고 그렸다. 실증주의 철학의 유행으로 인한 경험적 지식의 축적이 당시 유행이었으므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미술은 비싼 물감가격과 수집가들의 취향을 고려했을 때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실증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만종(The Angelus,1857-1859년, Musée d’Orsay)의 그림을 통해 당시 있었던 사회를 보여주었다. 그의 의도인지는 모르나 그의 그림을 분석해보면 여러 차례 그림을 보완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작품을 주문한 미국인 Appleton의 요구에 의한 제작이었지만 작품을 못 가져가게 되자 1865년부터 공개적으로 그림을 전시하며 팔려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미국과 프랑스에서 그의 그림을 사기위한 노력으로 미국으로 팔려간 그림을 다시 프랑스가 사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은 비싼 값에 팔렸지만 그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였고 이 그림덕분에 ‘droit de suite’라는 정책이 생겨났다. 화가의 작품을 되팔게 되어 이익이 생기면 화가나 가족에게 수익의 일부를 지급하는 것이다. 가난한 화가의 사후 그림에 대한 의미있는 사건으로 이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어려웠던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려했던 것에 인류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만종은 감자 바구니를 두고 신에게 감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지만 살바도르 달리는 숨겨진 비극의 신화라 주장했다. 그는 땅에 묻힌 아이를 위한 기도라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대로 엑스레이 분석을 해보니 최종 덧칠 전 네모난 관과 비슷한 형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신화로 좋은 작품이 되거나 비싼 그림 가격 때문에 명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비루해보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현실을 현실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명화를 올바르게 감상할 수 있다. 만종은 천국이나 이상향이 먼 곳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Last modified: 2017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