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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의 양반(兩班)

 

최고의 장편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888∼1968)는 양반가 출신이면서도 자신의 계급을 단호하게 부정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1938년 1월, <조선일보>에 실린 「이조 정치제도와 양반사상의 전모」라는 글에서 양반계급에 관한 부정적 평가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양반의 사상이라면 누구나 곧 유자(儒者)의 사상이요 또 얼른 본다면 그 곧 유자의 사상임이 틀림없으되, 양반사상의 핵심은 유자의 교훈보다 관벌(官閥)주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유자의 교훈이 양반의 관벌주의를 구성하여 주었다고도 보지 못할 것은 아니겠지마는 양반의 지도정신은 유자의 관벌주의적 경향을 더 일층 확충하였다고 볼 것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양반이란 그 말부터도 관원의 총칭으로부터 나온 것일 뿐이 아니라 양반정치의 부산물인 근세의 당쟁도 그들이 표면상 떠드는 모든 대의명분을 떠나 실상 ()() 양전(兩銓)의 쟁탈에다가 중요한 목표를 두었었다. … 양반의 사상과 유자의 사상을 세밀히 분석하여 볼 때에는 자연히 일종의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니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유자나 양반이나 다 함께 숭상하는 중에도 그 치중하는 곳이 다르다. 유자더러 어느 곳에 치중하려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仁)이라고 보겠지만 양반은 인보다 예()와 의()에 치중하고 있었다. … 인을 떠난 예와 의는 유자의 사상으로서 비판하더라도 허례(虛禮)와 허의(虛儀)로 돌아가기 쉽다. 양반의 예절과 의리도 많은 경우에 있어 형식에 흐르고 말았다. 그러나 양반사상의 핵심이 관료주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것은 도리어 필연한 형세다. 즉 의리는 그들의 목표를 세우기 위하여, 또 그와 같이 예절은 그들의 위의(威儀)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이외 아무것도 아닌 까닭이다.” 1 (밑줄은 필자)

글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유자(儒者)와 양반(兩班)을 분리한 것이다. 조선의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은 대개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조선이라는 국체가 5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근거를 인을 바탕에 둔 예와 의의 실행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벽초는 이를 냉정히 분리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양반(兩班)’이라는 어원이 이(吏)와 병(兵)이라는 양전의 형세에서 기인한다는 김춘택(金春澤)의 언급을 따르고 있다.

풀이하면, 이(吏)란 한 국가의 행정적 통치력을 담당하는 세력이며, 병(兵)은 국가의 물리적 통치력을 담당하는 세력이다. 한 국가를 관리하고 통치하는 방법과 기술은 단지 인(仁)에 기반한 유학에만 의존해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 국가를 통치⋅관리할 주체의 실리(實利)는 ‘어짊’만을 표방해서는 얻어질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 명분(名分), 이를테면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은 공맹(孔孟)의 왕도(王道) 사상에 두되, 형세(形勢)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통치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방도는 오히려 상앙⋅한비자의 법가(法家)와 손자의 병법(兵法)에 찾는 것이 적실하다.

그렇게 유자의 명분과 양반의 실리는 사실상 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벽초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아가 양반들이 자리다툼에 눈멀어 제국주의로 탈바꿈한 일본의 세력 확장에 대비하지 못하고 국체와 주권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하였을 법하다.

벽초는 양반계급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반계급의 특징을 꼽으라면, 대게 네 가지쯤 칠 수가 있다. (…)

(1) 소양(素養) : 양반은 지식을 농단(壟斷)하여 가지고 있던 계급인즉 학문을 중요하게 볼 것은 사실이니, 일반 한문지식 이외 독특한 학문을 요구케 된다. 양반 전체의 계보를 연구하는 보학(譜學)을 위시하여 내외 관직의 소임을 요구하는 관방(官榜)과 성례(成例)된 의례(儀禮)와 행사를 연구하는 고사(古事) 등이 곧 그러한 학문이다.

(2) 범절(凡節) : 윤기(倫紀)를 항상 내세우는 양반들에게 있어서는 봉선목족(奉先睦族) 2도 중요한 요소가 안 될 수 없다. 봉선적 목족에 성의를 표시하는 것을 범절이라고 한다.

(3) 행세(行世) : 애경상문(哀慶相問)으로부터 보통 교제에 이르기까지 촌호(寸毫)라도 남의 자의(訾疑)3를 받지 않는 것도 양반 인격의 중요한 요소다. 그와 같이 자의를 받지 않는 것을 행세라고 한다.

(4) 지조(志操) : 첫째 그들은 빈한을 견디고 재화를 천히 아는 것이 한 가지의 지조이니, 양반이 땅을 사고 돈을 만지는 것은 후세에 이르러 타락한 행동이며, 둘째 곤고(困苦)를 감심(甘心)하여 비열(卑劣)을 피하는 것이 또 한 가지의 지조니, 관벌주의와는 모순됨에 불구코 권문세가(權門勢家)에 출입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셋째 자중자대(自重自大)하여 경조부박(輕佻浮薄)을 경계하는 것이 또 하나의 지조니,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라도 정중한 태도를 가져야 하며, 넷째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던질지언정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 지조 중에도 가장 높은 지조니, 조선서는 절사(節死)와 순사(殉死)를 가장 높이 여기어왔다.

그러나 그 특징을 장처라 보려면 장처로 보겠지마는 다시 한번 돌이키어 단처로 보려면 단처로 못 볼 것도 아니니, 그러한 특징으로 말미암아서 양반정치는 진취적이 아니라 퇴영적(退嬰的)이요, 행동적이 아니라 형식적이며, 이용후생(利用厚生)적이 아니라 번문욕례(繁文縟禮)4적이다. 그러한 계급으로서는 한번 기울어진 이상 다시 재흥할 기력을 가질 수는 없는 것으로 반드시 외래의 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자체의 붕괴를 수습치 못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양반정치의 가장 큰 결함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대주의(事大主義), 또 하나는 숭문천무(崇文賤武)의 정신이다.5

벽초가 이 글을 <조선일보>에 투고한 지 80년이 흘렀다. 오늘의 대학교수들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은 대략 옛 조선의 양반계급과 유사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벽초가 지적한 양반계급의 퇴영적⋅형식적⋅번문욕례적⋅사대주의적⋅숭문천무적 결함에서, 지금 시절의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인사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곰곰이 따져볼 것도 없이 옛 양반계급보다도 더 못하다. 예의도 없고[無禮], 지식도 없고[無識], 격식도 없다[非人格]. 입은 더럽고, 머릿속은 기만과 모략, 가슴은 탐심(貪心)과 야욕(野慾)으로 그득하다. 추한 물건들이다. 이 형상들이 만인에게서 빼앗은 화폐의 힘으로 갖가지 권세를 부려 ‘인간’을 하루가 멀다 하고 괴롭히니, 실로 난세(亂世)다. 일제 치하보다, 전쟁 때보다, 유신 때보다, 전두환 때보다 더욱 더 어려운 시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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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홍명희, 「이조 정치제도와 양반사상의 전모」(<조선일보> 1938.1.3~1.5), 임형택⋅강영주 편,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사계절, 1996. * 이하, <벽초자료>), 131쪽.

2.선조(先祖)를 받들고 친족과 화목함.

3.헐뜯고 의심함.

4.번잡한 문장과 화려한 예절, 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

5.홍명희, 위의 글(벽초자료, 132~133쪽)

Last modified: 2017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