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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길 유랑 프로젝트

여주두지-1

 

여주 프로젝트 일부_그림 심병욱/글 박문영

산 너머 시집_이복 님, 92세, 상품리

제가 결혼한다고 용인 모현에서 여주까지 오십 리를 왔어요. 가마를 타고 태령을 얼마나 넘었는지. 그때 아스팔트가 깔렸나, 차가 있나, 주구장창 걷는 수밖에 없지 다른 도리가 있어요? 가마꾼들한테 미안해서 내려 걸을 때도 있고. 내 제일 멀리서 시집 왔을 거예요. 여주는 같은 여주라도 먼 데서 왔다고 대접해주는 덴데 친정을 떠나 그 길을 왔네요. 여기 온 뒤로 고향은 일 년에 한두 번 갔나. 스무 살 저랑, 열여덟 남편이랑 둘이 걸어 간 적도 있고 혼자 아이를 업고 넘어간 적도 있어요. 그 때는 자전거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지. 한 번 외출 하려면 아침에 나와 밤에나 도착하니까요.

 

남한강 위에 나무꾼_미상, 오금통

아버지를 10살 때 잃고 어머니랑 밭일을 했어. 그러다 나무를 팼지. 지게를 한 겨울에도 짊어졌어. 겨울 뒷산 나무를 베다가 얼어붙은 남한강을 건너 시청까지 팔러 갔으니까. 거기까지 지게를 가져가 세워두면 지나가던 관공서 직원이 “젊은이, 이 나무들 어디로 갖다 놓게”, 하는 거지. 나무 판 돈 13200원을 엄마한테 드리면 엄마가 동생들 학교 물품을 사주고 그랬어. 열여섯부터 그렇게 생계를 꾸렸다고.

 

살아 있었다면 이렇게 내 옆에_안인순 님, 89세, 오금통

나는 경기도 광주가 고향인데요. 참내, 종손 며느리가 좋다고 해서 우리 큰 아버지가 이리 보낸 거야. 애가 끌끌해서 이제 자수성가를 하고 나도 종갓집 살이를 잘 했다고 상을 탔는데요. 근데 이때까정 나 혼자 살았어. 남편이 6. 25 때 어디로 가서, 간데 온데 없어. 사라져서 찾질 못해. 왜정 때 군사 병사계에 있었거든. 모르겠어. 어떻게 된 건지. 실종인지 병사인지. 27살인가 가서 나하고는 상관이 없게 돼 버렸어. 9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종갓집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제 죽게 되니까 원통해요.

 

50년 신사복_김인기 님, 81세, 이포리

내가 9살부터 몸에 병이 있었어요. 부스럼 같은 건데 그걸 앓으면서도 농사를 했어요. 근데 계속 아픈 거야. 그래 수술을 받고 어쩌다 서울에서 일자리가 났어. 열아홉 살에 서울서 일을 배워 재단부터 다 했죠. 양복은 웬만하면 오륙년은 배워야 해요. 나도 육칠년 직공으로 배우고서 돈을 벌었지. 그러다 내 사업을 하고 싶더라고.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스물 일고여덟에 문을 열었어. 64년 쯤 여주에 들어와서 50년을 한 셈이죠. 지금은 눈이 피로해서 못 들여 봐요. 모든 게 컴컴해. 그때는 주로 신사복, 정장을 했어. 쌀 한 가마니가 만 원 정도 할 때인데 다른 집은 사람들을 두고 분업을 하니까 만 팔 천원을 받았어. 나는 혼자 하니까 만 원을 받았지. 싸게 하기도 하고 외상을 받기도 하고. 하여간 혼자 재단하고 꿰매고 가봉하고 다림질까지 다 한 거야. 보통 새벽 2시까지 만들었지. 양복 품질이 좋았어. 지금은 화학 나이롱으로 만드니까 차가워. 근데 그땐 양모로 만드니까 질이 좋고 무거웠지.

 

귀향_채옥남 님, 89세, 이포리

남편이 7년을 나가 있었잖아.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서 못 올 뻔 했죠. 그 사람이 우리 딸 3살 때 끌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왔어요. 저는 여기 남아 시어머니랑 농사짓고 바느질하고 안 해본 거 없어요. 딸 하나 데리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밥 안 굶기려고 십 리를 걸어서 나무해 이고 묶어 나르고. 그래 기약도 없다가 남편이 강제포로수용소에서 마지막 교환 때 넘어온 건데요. 말도 못 해. 군인들이 땅을 파라고 하고 여기 머물 테냐, 갈 테냐 물어 가족이 있어 가야한다고 답했대요. 그러니까 지금 판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들어가 있으니 총을 일부러 빗나가게 쏜대요. 겁주려고. 하이고, 진저리가 나요. 포로생활 끝나고 남편이 돌아오는데 군복 입은 남자가 싸리문에 들어서니까 딸이 “군인 아저씨 온다, 군인 아저씨 온다.” 즈이 아부지를 보고 그래요. 그 소란이 끝나고 보상도 없고 딸도 남편도 세상을 다 뜨고 참 허무한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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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경부터 여주의 마을 회관들에서 3,4일간 묶어가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그려왔던 작업들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문화기획 그룹 ‘공’의 주도로 사진 작가와 아트토이 작가 그리고 저 그림작가등이 모여서 2달정도 현장에서 인터뷰를 했고, 11월 말경 여주시내에 있는 전시 공간 ‘여주 두지’에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심병욱 (그림)_ 충남 공주에서 아내와 반려동물들과 함께 오래된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문영 (글)_뭔가를 표현할 때 텍스트와 이미지로 말하는 걸 좋아해요.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있으며 소설과 만화를 계속 만들 생각입니다.

Last modified: 2017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