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 미술 밖 사설

숙골의 어둠과 만나고 돌아오다

 

며칠 전 이방인처럼 흘러흘러 들어선 마을, 밤 8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지만, 숙골의 어둠은 묵언(黙言) 수행자의 침묵처럼 깊었다. 내가 어둠에 섞여 물감처럼 풀어지며 스며들던 그 거리 거리 위로 한때는 부산하게 오고가는 아들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동심원이 되어 흘렀을 거다. 밤이면, 골목으로 난 창문 안에선 환한 불빛들이 새어나오고, 피곤한 가장들은 한 봉지의 과일과 숙명 같은 피곤을 손에 들고선 가족들이 기다리는, 옹색하지만, 따뜻한 대문을 열어젖혔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매서운 겨울바람만이 인적 없는 골목을 휩쓸고 다녔다. 적요(寂寥)한 민가의 앞 뒤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우람한 대학건물이 밤바람 속에서 홀로 떨고, 휘황한 길가의 네온등 너머로 불안한 어둠만이 나를 응시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 오직 그곳의 주인이 된 길고양이 울음소리만 처연하게 들리던 숙골……. 추억과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헤아리기 만만찮은 흘러간 세월, 그 시간 속에서 나도 많이 변했고, 도시도 변했다. 모든 사물과 공간은 세월 속에서 변화하기 마련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곳을 벗어나며 나는 조금 슬펐다. 낯익은 서화초등학교 교사(校舍) 위에 외롭게 떠있는 상현달에게 눈인사를 보내며 인천교 쪽으로 걸어 나올 때, 추억의 바다에 드리웠던 마음의 닻줄 하나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가로등 빛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지극히 ‘구체적인’ 내 방으로 안전하게 귀가했다. 현관을 들어설 때, 숙골을 떠돌던 몇 점의 어둠이 옷깃에 묻어 나를 따라왔다가 환한 불빛을 보자 낯가림이 심한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 흩어졌다. 겨울밤은 저 홀로 깊어가고, 나는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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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계봉_1995년 제2회 실천신인상으로 등단. 90년대 노동운동을 해왔던 그는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인천민예총 상임이사로 있다.  시집에는 ‘너무 늦은 연서’를 포함한  22년동안 68편의 시가 담겨있다.

 

Last modified: 2018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