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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의 후반에서

 

2018년 5회차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이 어느새 후반을 향해가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번의 사업에 파견예술인으로 참여하게 된 나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매우 기대하고 애정 한다. 예술인이 자신의 영역에서 오롯이 존재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들이 이 사업의 진행과정 곳곳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찾을 수 있는 좋은 점은 ‘매칭’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들의 작업이야기, 기관이 원하는 이야기들을 진중하게 나누며 작가는 자신이 속하고 싶은 기관을 찾고, 기관과 퍼실리테이터는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를 생각하는 과정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기관들은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작은 부스를 설치해두고 수백 명의 작가들과 직접 마주한다. 그 시간은 1분 남짓이 될 수도 있고, 서로의 관심에 따라 더 오랜 시간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 자신의 작업을 진중하게 들어주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각인시킬 수 있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이외에도 새로운 기회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두 번째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들이다. 기관과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예술인들은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인과 만나 팀을 꾸려야한다. 그렇기에 인위적으로 합을 짜지 않아도 기관과 예술인의 매칭 과정이 끝나면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필연적으로 모이게 된다, 미술, 음악, 문학, 공연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반년정도의 시간을 함께 모여 회의하고 하나의 작업을 이끌어가는 프로젝트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여타 활동이나 공모사업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경험도 아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면서 얻게 되는 정보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와 쉽게 융·복합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사업의 세 번째 강점은 예술과 밀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기업체들에 속해보는 것이다.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에 선정된 기관 중에는 광고, 연극, 영화제작사, 게임 회사 등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 곳도 있지만, 공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 NGO 단체 등 일반적으로 예술이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이 생각되는 곳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런 기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예술은 삶 그 자체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묘한 자존감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의 강점은 ‘활동비’다. 일반 레지던시나 공모사업의 진행비는 온전히 작가의 작품제작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작업과 관련 없는 경제적 비용은 다른 곳에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지급되는 활동비는 사용에 제약이 없고, 그 금액역시 보통공모사업들의 활동비 보다 높게 책정되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사업 기간 동안은 활동비만으로 예술 활동만 하면서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강점들에도 불구하고 예술인과 참여기관 사이에는 지속적으로 이해관계의 대립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안타깝게도 프로젝트의 참신함 그리고 예술적 가치와 직결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예술인들은 본인의 작업을 기관과 협력하여 더 심도 깊게 발전시키겠다는 기대를 가진다. 그리고 사업이 끝나도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기관과 지속적으로 연계되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길 기대한다. 그렇게 본인의 작업에 대한 높은 자신감과 자존감과 책임감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 그럼에도 생각 외로 평이하다고 느껴지는 결과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결과에 예술인들도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심심한 결과물이 나타나는 원인을 예술인과 참여기관의 생각차이에서 오는 의견충돌에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예술인들은 참여기관이 본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 예술인 파견사업에 3회째 참여예술인으로 사업에 참여해온 작가는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기관을 만나 경험을 쌓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그럼에도 기관에서 예술인의 활동에 대해 온전히 이해해주는 기관을 만난 적은 없어 아쉬웠다.”고 이야기 한다. 심하게는 이해하려는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차라리 문화예술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들을 위주로 선별하는 것이 예술인들의 프로젝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인이 기관에 느끼는 이런 감정들은 사업에 참여하는 다른 예술인들과 만나 이야기해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다. 예술인들이 참여기관에서 본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는 상황은 주로 기관과 회의를 나누고, 본인들이 활동할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파견예술인 면접 심의 평에서는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의 목적은 활동 지속을 위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예술 활동의 접촉면을사회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있다. 예술인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막상 사업을 시작해보면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이 파견지원사업을 통해 기관과 예술인이 함께 만나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의 요구는 대부분 벽화제작, 홍보물, 로고제작, 일회성 음악, 연극 공연 등이 주를 이루며 이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면 불편해하고, 의문을 갖고, 당혹스러워 한다. 이렇게 되면 예술은 사회로 나가 확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입지만 더 좁아진다. 그러나 기관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먼저 그들은 예술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술이 자신들의 회사업무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수 있는 부분을 홍보물, 로고제작, 공연 등으로 한정시킬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필요해지고 결국 그것을 요청하게 된다. 그렇게 관념이 굳어지면서 예술인들이 제시하는 다른 의견들은 기업들이 처음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신청하면서 기대했던 방향과는 맞지 않았을 것이고, 그 상황이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것 이라고 이해한다. 여기서 기관이 불편함과 당혹스러움을 감수해 준다면 예술인들은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펼쳐 즐겁고 원활하게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관이 이 불편함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사업 내내 지속적인 의견충돌로 예술인은 기관이 제시한 의견의 예술적 가치는 배제한 채 그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해주고 원활하게 사업을 마무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다. 이런 상황을 조율하고 기관과 예술인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존재한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의 입장에서는 양쪽을 동등한 관계에서 조율할 장치 없이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퍼실리테이터로서 본 사업에 참여했던 예술인은 “파견기업이 이 사업에 연속적으로 참여했을 때 그에 대한 혜택이 따로 없고, 그렇기 때문에 파견기업을 제제할 방안도 마련되어있지 않아 예술인이 쉽게 을의 입장에 빠지게 된다.”는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이런 일들은 참여기관이 본 사업의 핵심내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예술인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입장만을 요구할 때, 더 크게 와 닿는 문제점이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예술인들과 가벼운 의견충돌이 있던 기관에서는 사업을 지금당장이라도 중단해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활동내용을 하나하나 필요이상으로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며 예술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예술인은 기관의 의견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관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기 위한 시도들을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조금은 평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결과물이 탄생되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말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의견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기업, 예술인, 주최 측 누구하나에게 책임을 묻고, 어떤 한 부분을 당장 고친다고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그동안 ‘비실용성’, ‘비수익성’의 오명을 쓰던 예술이 ‘수익성’과 연결되는 사회의 역할로서 적극 참여하게 되는 가능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시도이며 매우 의미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고작 5년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고,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지 모른다. 예술이 자신을 지키면서도 사회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방법, 사회가 예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즐기는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충돌들은 그 방법을 배우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즐거운 논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파견예술인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참여예술인 서류심의평의 한 부분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작성된 서류에서 상당히 많은 관점의 한계 등을 발견하였는데, 본 사업이 사회적 봉사나 교육활동 정도로 오인하거나 예술에 대한 지나친 낭만적 태도를 보였으며, 기업․ 기관과의 협업을 단순한 수준에서 기능적 사고로만 접근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심의과정에서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대한 근본적 고민, 나아가 예술의 사회적 개입에 대한 예술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이나 또는 비판적 시각 등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은 실로 아쉽다.” 아마 그동안은 거기까지 고민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지속적으로 예술과 사회가 하나 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문제를 찾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앞으로의 파견지원사업에서는 예술과 사회가 공존하는 대안이 쏟아져 넘칠 것이라고,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사회가 함께하는 시작이 열릴 것 이라고 희망해 본다.

참고 – 2018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예술인 서류심의 심의평

2018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참여예술인 면접심의 심의평

Last modified: 2018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