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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만들어진 환상

 

용이 납치해간 아름다운 공주를 찾아서 세계 각국의 용맹한 기사들이 빛나는 갑옷을 입고 왕에게 말한다. ‘제가 바로 공주를 구출해 올 것입니다!’ 왕은 전에도 공주를 구출해 올 것이라 믿고 기대하였지만, 이전의 기사들은 늘 돌아오지 못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공주에 대한 소식은 왕의 마음속 탄식으로 자리한다. ‘이제, 이 세상에 진정한 기사는 없단 말인가!’ 이때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맑은 콧물이 흐르고 꾀죄죄하기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행색이다. 입구에서부터 문지기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등장한다. 왕의 기대는 이미 물 건너 간지도 오래지만 주인공은 나름 수환을 발휘하여 왕에게 흥정을 건다.

흔해 빠진 용과 공주 그리고 초라한 기사의 뻔한 스토리이다.

몰골이 엉성한 기사는 멋지게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낸다. 이윽고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왕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초라한 행색의 기사가 가진 거라고는 무모한 용맹함이고, 그 용맹함은 부와 미모의 아내 그리고 국토가 딸린 권력까지도 쟁취했다.

세상에 용은 없겠지만, 만일 있더라도 용이 인간을 볼 때 음식으로 생각할 것인데 수일 혹은 수년간 공주를 잡아먹지 않고 가두어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갇혀있던 공주는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도 수수께끼이다. 잡혀간지 한참이 지나 살아있는 공주는 용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에 개인적 해석이나 분석을 하면, 영혼이나 정서가 메마른 사람으로 결정되곤 한다.

이것은 소설 이야기니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동화 같은 사건이 존재했다. 상황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다수의 생각과 다르다고 영혼이 없거나 정서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쉽다. 세월호 사건, 노동인권을 바라보는, 미투 등과 같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것에서도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면 개인 성향을 좌나 우 극단적으로 기우려 단정하곤 한다. 사람은 각각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통해 경험적인 가치관이 형성되고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가치관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상황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며 이해관계에 의해 좌나 우를 초월하여 움직인다. 때에 따라서는 누군가의 교육으로 바뀌거나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큰 사건에 대해 논의를 할 때면 갑의 횡포에 눌려온 을의 반란처럼 사회 다수의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다. 다수의 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힘없는 을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을이라는 모습으로 포장된 또 다른 갑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불러 모으는 방법으로, 동일한 사건이나 공통된 관심을 통해 뜻을 하나로 모은다. 이것은 하나의 상황에 가두어 놓아서 다른 것을 개인적으로 인식 못하게 하려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2016년, 새누리당 후보가 되면 박근혜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현수막에 걸어놓았다. 새누리당 뿐만이 아니라 낙선하여 타당 후보가 되었거나 무소속인데도 박근혜대통령과의 기념사진을 당당하게 현수막에 걸어두기까지 하였고 이를 두고 새누리당 후보가 된 사람들은 사진사용하지 말라며 항의까지 하는 상황도 있었다. 2018년은 문제인대통령과 찍은 기념사진을 들고 대형 현수막으로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등에 업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유아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토록 유명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유권자의 의식 수준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이다. 이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적, 사회 수준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용이 공주를 업어 키우며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것처럼 생각 없이, 분석 없이 현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현실이 없고 가상만 있게 된다. 각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환상은 개인 생각을 말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갈 때 쉽게 완성이 될 것이다.

Last modified: 2018년 9월 6일